상단여백
HOME 메디팜플러스 칼럼
[성명]건강보험 부정수급 방지대책을 결사 반대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공단)은 지난 6월 3일 금년 7월부터 병,의원 등의 요양기관이 건강보험 무자격자 및 체납 후 급여제한자 등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자격이 없는 환자를 진료하고 건강보험 진료비를 청구하면 진료비를 미지급하는 건강보험 부정수급 사전관리제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요양기관이 환자를 진료할 때 수진자의 건강보험 자격확인을 의무화한 것으로서, 작년에 국회에 법안이 상정되었다가 의료계의 강력한 반대로 폐기된 최동익 의원의 소위 “신분증 법안”과 거의 복사판이라 할 수 있다.

공단은 이 제도를 정부, 의약계 단체대표, 공단과의 협의를 거쳤다고 밝혔는데, 어제 의협신문의 “건강보험 무자격자 관리 깐깐해진다”는 기사에서 “대한의사협회는 '환자 신분확인 강제화'를 막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정부와 공단에서 진료 전 요양기관의 환자 본인확인을 의무화하는 법 개정작업에 힘을 쏟고 있는 상황에서 법제화 보다는 의료계 자율적으로 자격관리에 나서도록 하는 것이 실익이 있다고 판단했다"는 의협 관계자의 발언을 보고 전국의사총연합(이하 전의총)은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단의 부정수급 사전관리제(건보자격 확인 의무화)가 과태료가 있고 없고의 차이 외에 “환자 신분확인 강제화”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의료계는 최동익 의원의 신분증 법안도 막아냈는데, 무엇이 두려워 공단과 야합을 했는가? 본 회는 이 제도 시행에 합의해 준 의협 집행부를 비판하며, 내일 개최되는 의협 상임이사회에서 이 합의를 무효화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는 바이다.

전의총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공단의 건강보험 부정수급 방지대책을 강력히 반대한다.

첫째, 수진자 자격확인의 1차적 책임자는 요양기관이 아니라 바로 공단이다. 국민건강보험법 제14조에는 공단이 관장해야 할 업무 13개를 규정하였는데, 이중 첫 번째가 바로 건강보험 가입자 및 피부양자의 자격 관리인 것을 봐도 잘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요양기관들은 공단의 업무를 일부 대행하여 수진자의 건보자격을 확인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해왔다.

이런 요양기관에 대해 고마워하지는 못할 망정, 요양기관의 수진자 자격확인을 용이하게 할 방도를 마련하여 협조해달라고 엎드려 부탁해도 모자랄 판에, 공단은 요양기관에 건보자격 확인 의무를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줄 안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둘째, 의사가 환자를 성심 성의껏 진료 후 진료비를 청구한 것을 단지 환자의 건보자격을 확인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단이 지급하지 않겠다는 것은 의사가 정당하게 받아야 할 진료비를 공단이 강탈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진료의 이득은 환자가 본 것인데, 진료한 죄밖에 없는 의사가 환자의 부당이득금을 대신 납부한다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인 국가에서 가당하기나 한 것인가?

지금까지는 무자격자나 급여제한자가 진료를 받았을 때에 요양기관에서 진료비를 청구하면 공단은 이를 모두 지급하고, 이들로부터 부당이득금을 징수하였다. 그런데 부당이득금 징수율이 낮아 건보재정 누수가 많다는 이유로 부당이득을 취한 무자격 수진자가 아닌, 요양기관으로부터 그 이득금을 징수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매우 잘못된 것으로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셋째, 이 제도가 시행되면 환자진료에서 가장 중요한 의사-환자 관계를 훼손시킬 것이 뻔하다. 의사와 환자 관계가 잘 형성된 상태에서 보험자격 변동으로 보험혜택을 받을 수 없다고 하면, 그 순간부터 환자는 의사를 불신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접수대에서는 왜 내가 보험자격이 없느냐며 실랑이를 벌이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날 것이다. 의사-환자 관계의 훼손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이 제도 시행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보다 훨씬 클 것이 뻔하다.

넷째, 사진이 부착된 건강보험증이나 주민등록증을 환자가 의무적으로 휴대하도록 하지 않는다면, 그 어느 요양기관에서도 환자 본인여부를 알아낼 방도가 없다. 공단은 환자가 요양기관을 속일 목적으로 건강보험증을 도용한 경우 등에는 요양기관의 책임을 묻지 않도록 했다는데, 요양기관을 속일 목적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대만의 스마트카드처럼 환자의 사진과 보험자격 정보가 수록된 건강보험증을 의무적으로 지참하도록 하지 않는 한 이 제도는 결코 시행되어서는 안 된다.

다섯째, 수진자의 건보자격 변동이 곧바로 공단의 전산시스템에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조회하다 보면 월말에 직장을 옮길 때 약 10일 정도는 무자격자로 나오는 경우가 있다. 또한 건보자격 변동이 나중에 소급 입력되어 진료 시에는 보험혜택을 받을 수 있었으나 후에 무자격자로 나오는 경우가 있다. 공단 전산시스템에 자격변동이 언제 입력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여섯째, 수진자 자격조회를 위한 공단의 전산시스템이 잦은 오류를 일으키고 있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총 7회의 전산 오류가 발생해 조회가 지연되었다. 이 경우에는 공단에 일일이 전화해서 확인하라고 하는데 이는 의료현실을 전혀 모르고 하는 말이다. 완전 먹통이 아닌 평상시에도 공단 전산시스템이 불안정해 접속을 위한 공인인증서가 수시로 로그아웃되는 경우가 있다.

또한 요양기관 내의 인터넷 연결에 문제가 있어 조회를 하지 못할 때에는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아직도 전자의무기록을 사용하고 있지 않은 요양기관이 꽤 되는 것으로 아는데, 이런 요양기관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전의총은 건강보험 부정수급 방지대책은 요양기관이 아니라 오히려 공단 자체를 대상으로 먼저 수립되어야 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부정수급에 의한 건강보험재정 누수의 거의 대부분이 공단의 업무태만에 기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공단은 건강보험료를 장기간 체납한 가입자에 대한 보험급여제한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법에는 건강보험료를 6회 이상 체납한 가입자에 대하여는 보험료를 완납할 때까지 보험급여를 제한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나, 2008년부터 2013년까지 6년 동안 장기 체납한 세대 중 급여제한이 된 세대는 불과 70% 초반에 불과하였다.

체납세대 10세대 중 3세대는 급여제한이 되지 않았으며, 이들은 보험료를 내지 않았음에도 정상적인 급여진료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이는 공단에서 발송한 급여제한통지서가 가입자에게 도달하는 시점부터 보험급여제한의 효력이 발생되는데, 공단이 이를 제때 발송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둘째, 6개월 이상 체납해 급여가 제한된 가입자들이 2006년부터 2013년 8월말까지 부당 수급한 진료비가 무려 3조7774억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2013년말 기준 부당이득금으로 환수 고지한 금액 1조3천억원 중에서 실제 징수한 액수는 고작 112억원(0.9%)에 불과하였다. 이는 2006년 1월부터 2010년 12월 사이 급여제한 기간 중 진료사실통지서를 2011년 7월에 단 한번 발송하는 등의 공단의 심각한 업무태만에 기인한 것이다.

공단은 2012년 5월 감사원의 지적을 받고 나서야 진료사실통지서를 매년 발송하고 있다. 당시 감사원은 "공단이 보험급여제한과 진료사실통지를 비정기적 또는 행정편의적으로 운용함으로써 건보료 수입감소로 건강보험재정의 건전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셋째, 공단의 보험자격 관리에 대한 늑장대응이다. 공단이 2012년 9월 이학영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2년 6월까지 건강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은 4,883명의 외국인, 재외국민의 자격상실 처리를 제 때 하지 않아 6억3천만원 가량의 재정이 누수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같은 늑장대응에 의한 건강보험재정 누수에 대하여 과연 공단이 응분의 책임을 졌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공단의 업무태만으로 인한 건보재정 누수에 비하면, 무자격자와 급여제한자에 의한 부당수급 규모는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지난 3년간 자격상실 후 부당수급 결정금액은 144억원, 환수금액은 63억원으로서 실제 누수액은 81억원이며, 급여정기 기간 중 부당수급 결정금액은 49억원, 환수금액은 33억원으로서 실제 누수액은 16억원이다.

이 두 항목에 의한 3년간 실제 건보재정 누수액은 97억원에 불과하다. 동 기간 급여제한자가 보험혜택을 받은 금액(공단부담금)이 1조7천억원이 넘는 것을 고려하면, 건강보험 부정수급 방지대책의 대상이 어느 곳이 되어야 할 지는 명명백백해진다.

결국 공단의 이 사업은 부정수급에 의한 건보재정 누수의 책임을 힘없는 요양기관에 떠넘기기 위한 공단의 비열한 술책일 뿐이다. 전의총은 의약계 단체대표와 협의했다는 이유로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시행되는 공단의 건강보험 부정수급 사전관리제 시행을 결사 반대하며, 그럼에도 공단이 강행하려 한다면 모든 법적 조치를 강구하여 막아낼 것임을 천명하는 바이다.

의협은 공단과의 합의를 하루 빨리 무효화시킬 것을 다시 한번 강력히 요구하는 바이다.

2014년 6월 10일
올바른 의료제도의 항구적 정착을 위한 전국의사총연합

편집부  dailymedipharm@gmail.com

<저작권자 © 데일리메디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