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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람은 되지 못해도 괴물은 되지 말자"

대한민국 헌법 제27조 4항은 형사 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고 규정한다. 무죄추정의 원칙을 헌법에 명기한 것이다. 프랑스 시민혁명이 얻어낸 국가권력으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리다.

하지만 21세기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이를 철저히 악용, 국민들에게 공분을 불러일으키는 이들이 너무 많다. 자신을 ‘절대선(絶對善)’으로 여기는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 ‘죽을 죄를 지었다’에서 ‘민주주의 특검이 아니다’말 바꿔 외친 최순실, ‘원조 법꾸라지’김기춘 전 비서실장, 그리고 18일 피의자 신분으로 특검에 불려간 ‘무소불위’의 ‘신(新) 법꾸라지’우병우 전 민정수석까지 보기가 민망하다.

독일 공법학자 게오르크 옐리네크는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법을 어기지 않았더라도 도덕적이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는 게 일반적인 사람들이다. 하지만 누릴 만큼 누린 분들이 틀림없이 법적으로도 많은 죄를 지은 것이 드러나는 상황에서도 너무나 떳떳해 당황하게 만든다.

고전 영화‘로마의 휴일’의 오드리 헵번은 나치에 협조한 아버지를 둔 것에 죄책감을 느꼈단다. 아버지와 딸이라는 천륜인데도 말이다. 그래서 전쟁 중에는 스스로 나서서 네덜란드 레지스탕스를 도왔다고 한다. 안네 프랑크와 동갑이었던 그녀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다음에 그녀가 쓴 ‘안네의 일기’를 읽었다. 자기와 너무나도 비슷한 상황에서 안네는 죽고 자신은 운이 좋아 살아남았다는 것에도 평생 죄책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전 세계 어린이들을 위한 유니세프 대사로서 봉사활동에 전념했다. 그리고 암에 걸린 몸을 이끌고 목숨이 다할 때까지 전세계에서 아이들을 위한 기부금 모금 행사를 벌였다고 한다. 아버지의 죄와 살아남았다는 도덕적‧심리적 죄책감을 봉사로 승화시켜 아직까지 우리들 가슴에 남아있는 것이다.

윤동주의 ‘서시’처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사람이라면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가 자신의 묘비명으로 삼은 ‘머리 위에는 별이 반짝이는 하늘, 내 마음에는 도덕률’이라는 말을 한 순간이라도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닐까. 요즘 언론의 ‘나쁜 조명’을 받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 ‘생활의 발견’에서 주인공이 말한 것처럼“우리 사람은 되지 못해도 괴물은 되지 말자.”

편집부  jys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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